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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유 실록 '무(無)'-1. 화려한 출발 <계속 1>

프라임경제 기자  2005.09.15 17:5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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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김동가(오륜스님), 그림= 김진두

 

 

 

네. 조금만 더 구경하고 갈래요. 바로 앞에서 25번 타면 금방 가니까 걱정 마세요.”

“그럼, 그러세요. 올라갔다가 올테니 필요한 게 있으면 시키세요.”

“송군아, 여기 맥주 두병 더 섹스폰 앞으로 시켜라.”

“예. 예. 걱정 마시고 올라 가세요.”

마지막 스테이지에 화려한 무대가 열렸다.  샨제리에가 돌아가고 일곱 가지의 조명등이 찬란한 무대. 진행자 백남봉씨가 마이크를 잡는다.

“오늘도 변함없이 이렇게 빈자리가 없도록 꽉 꽉 메워주신 손님 여러분! 대단히 감사 드립니다.  불초소생이 큰절을 올립니다.  만수무강 하시고 두루두루 가내 평안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엎드려 큰 절을 하고는 “내 절을 받으신 손님께서는 내일 또 만나 뵈옵기를 간절히 바라겠습니다.”

마지막 스테이지의 첫 번째 순서는 고운봉씨의 선창부터 출발, 검은 싱걸 차림에 하얀 손수건을 왼쪽 작은 포켓에다 꼽고 무대에 나타나면서 선창의 전주가 끝나고 노래가 흘러나온다.

“울려고 내가 왔던가 웃을려고 왔던가 비린내나는 부둣가에 이슬맺힌 백일홍....”

마지막 순서인 전속무용단이 10명이나 일렬횡대로 캉캉 춤을 추는 동안 손님은 하나 둘 빠져나가고 카운터에서는 계산하느라 마치 시장터를 방불케 한다.

공연이 끝나고 대기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개러티 계산을 마치고 나오니 입구에서 “김선생님 여기요.” 하면서 달려나온다.

“선생님 밖에 눈이 와요. 눈이... 우리의 만남이 행운인가 봐요.  그렇죠?”

“글세...”
하고 틈바구니를 헤치고 나오니 함박눈이 제법 쌓여있다.

“신림동, 신림동...” 하고 미스연이 외친다.

“미스연, 집이 신림동이야?”

“네”

“그래? 가만있자... 어이 순태,  순태야.”순태가 왔다.

“니네 집이 신림동 어데라고 했노?  극장 앞 다리있는데라 했제?”

순태도 신림동에서 방을 얻어 자취를 하고 있었다.
“예, 그곳에서 만 삼년 이라요”

충청도 청원 모 고등학교 악대부에서 섹스폰을 불다가 졸업을 하고 서울로 상경한지가 벌써 그렇게 세월이 흘렀다는 넋두리다.

“그래, 마침 잘 되었다.  미스연 바래다 주고 나, 오늘 느그집에서 잘란다.”

“그러세유.”

셋이서 미스연이 세운 코로나 택시에 몸을 실고 출발하면서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서울역 불빛이 보이면서 나는 고개를 뒤로 졎혀 몸을 조금 움직일 때 “매일 이렇게 늦으세요? 피곤하시겠어요 내일 또 사무실에 놀러가도 돼요?”

애교썩인 얄굿인 목소리로 말을 해놓고는 멋쩍은 듯이 웃는다.

“그래요 그럼, 그런데 내일은 강의가 없나요?”

“내일 강의는 별 볼일이 없으니 괜찮아요.”

“학생이 땡땡이를 까면 돼나.”

“형님, 그러는 형님은 공부하기 싫으면 행사연습 한다고 오전수업만 하고는 오후수 없이 마냥 땡땡이를 쳤다면서 뭘 그래요”

“그러는 너는 안 그랬나?”

“하..하...하....”

눈길을 잘도 달린 코로나 택시는 웃는 순간에 멈춰 서며 “손님 신림극장 앞입니다.”

젊은 운전수의 허스키보이스가 마음에 들어 속으로 “그 사람 노래를 잘하면 성공하겠군.” 하며 요금을 지불하고 내리는 순간에 “어머나” 하며 미스연이 눈길에 미끌어 지면서 나에게 매달린다.

순간 엉겁결에 끌어 안았다 풀고는 “아이쿠 데게 미끄럽군” 하면서 멋쩍은 미소를 하고는 평정을 찾아 “자 그럼 미쓰연 내일봐요” 하고는 순태와 다리를 건너 순태네 집으로 가다가 뒤를 돌아보니 미스연은 손을 흔들고 있다.

어색하게 손을 흔들어 주고는 곧장 걸었다. 눈길에 몇 번 미끌했다. 시장 모서리에 있는 레코드가게에서 나훈아의 신곡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라는 곡이 흘러나오면서 눈보라에 걸 맛다는 느낌을 갖는다.

다음날 10시부터 장춘단 녹음실에서 음악녹음이 있는데 편곡을 하나도 하지 않았다.

순태네 자취방에 도착하자마자 발을 씻고는 “순태야 오선지 있나”

“예”

“좀 많이 줘봐라, 내일 녹음인데 편곡을 해야겠다.”

“알았어유”

한번씩 충청도 사투리를 쓰는 순태가 착하게 보였다.

“참, 담배가 몇 까치가 없네. 담배 좀 사와라.” 하며 돈을 꺼내 줄려고 하니 “관둬유, 내가 구멍가게 갔다 와야 할 것인데 담배는 뭘로 사와유”

“아리랑”

“알았어유”

골방에 오래간만에 찾아온 손님이라 제 딴에는 음료수랑 보름달이라는 빵을 싸들고는 “옛슈, 아리랑”

“고맙다.”

편곡을 끝날 무렵 담배는 몇 까치 남고 어둠이 걷히고 안개가 옹기종기 모인 판자집 지붕위로 자욱히 갈렸다.

“꼬끼오”

어느 집에선가 장닭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그놈의 달구새끼 일찍이도 일어났네” 하고는 몇 시간 눈을 붙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