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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유의 실록 ‘무(無)’ 1.화려한 출발 <계속 8>

60년대 가요계의 사랑과 배신-본지 단독연재

하지연 기자 기자  2005.11.10 11:2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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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김동가 (오륜스님), 그림= 김진두

   
순자씨도 만화책을 보다가는 필시 늦잠을 잘 것이다. 현관문을 피해서 옆문으로 갔다. 방으로 바로 통하는 문이 있었다.

신발을 벗어들고 방으로 들어가면서 그녀에게 말했다.

“미스연도 신발 벗어 들고 들어와요. 신발은 여기 올려놓고.”

선반 위에다 신발을 올려 놓고는 그녀의 신발을 넘겨받아 올리면서 자상하게 덧붙였다.

“방이 우풍이 있으니 코트를 벗고 이불 속으로 들어가요. 이불 안은 따뜻해요. 내가 밤새 있었으니까….

그녀의 코트를 벗겨 벽에 걸고 나도 점버를 벗어 벽에 걸고는 한쪽에서 바지를 벗었다. 잠옷을 입은 채로 바지를 입었으니 스스럼 없이 벗었던 것이다.

“참! 미스연, 이거 입어요.”

내가 입던 목이 없는 티를 옷장에서 꺼내 들고는 건네주었다.

“그냥 미스연이 입던 옷은 꾸겨지니까 벗어서 걸고 옷장 속에 내 옷으로 갈아입을만한 게 있나 봐요. 참 밑에는 내 추리닝을 입으면 되겠네….

추리닝을 찾아 주었다. 그녀는 멋쩍은 듯이 빙긋이 웃었다.

“괜찮아요. 내가 알아서 할께요.”

“그렇지 않으면 이불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으니 미스연은 밖에 있을 꺼야?”

조금 화가 난 투로 억양이 높아지면서 반말을 했다. 이제부터 구차하게 존댓말을 할 필요가 없다 싶었다. 그녀의 반응을 살피면서 조심스럽게 말했다.

“좌우간 미스 연은 편한 대로 옷갈아 입고 있어. 입었던 옷은 다시 입고 나가야 하니까 꾸겨지면 그렇잖아. 그렇게 하는 것이 국가와 민족을 위해 좋을 꺼야….

“그럼….

그녀는 옷장 속을 뒤적거리더니 커다란 와이셔츠 하나를 꺼내들며 다소 퉁명스레 말했다.

“됐어요. 돌아서세요.”

우장바우 같이 축 늘어진 와이셔츠가 무릎까지 내려오는 게 아닌가. 브래지어, 팬티에다 와이셔츠를 걸쳐 입은 모양이다. 그녀는 입고 온 옷은 질서정연하게 벽에 걸어 놓고는 농을 건다.

“폼이 어때요?”

“하!하하하하!”

“호호호호!”

한바탕 서로 웃었다.

“영화 속의 한 장면 같아, 물에 빠진 여주인공을 구해서 갈아 입힐 옷이 없어서 와이샤쓰를 입히고 남자는 옷을 말리는 그런 장면 말이야….

“허!허허허!”

그녀는 거울 앞에 가서 자기 모양새를 보더니 얼굴에 붉은 기운이 감돌면서 부끄러운듯이 말한다

“몰라요. 놀리시면….

내가 먼저 이불 안으로 들어가 베개를 가슴에 받치고 엎드리며 가까운 접촉을 유도했다.

“미스연도 이렇게 하고 엎드려 봐. 내가 일할 것을 순서대로 해 놓을 테니까. 일을 시작하자구….

정리된 악보를 순서대로 그녀 앞에 놓았다.

“여기는 이렇게 ○로 표시를 하고, 여기는 △표시를 하고, 이곳에는 + 이런 표시를…. 이곳하고 이곳에만 하면 되는데 빨간 것으로 표시를 해야 하고, 곡명을 파란 매직으로 사용하면 되는데, 이쁘게 잘 써야 해….

“알았어요. 해 볼께요.”

잠시 동안 서로 말이 없이 글 쓰는 소리만 들린다. 한 이불 속에 여자랑 있으니 기분이 묘했다. 마음이 들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좌우간 형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정신이 혼동스럽다.

그녀는 열심히 그리고 있는데 나는 악보 나부랭이가 눈에 들어올 리가 없다.  어떻게 한다! 좀 자연스런 방법이 없나   하고 몸부림을 치는 시늉을 하면서 오른쪽 다리를 그녀 허벅지에다 얹었다. 파자마를 입은 상태이니 별 촉감이 있을 리 없었다.

“아이! 무거워요….

“어! 그래?”

무엇에 들킨 기분으로 멋쩍게 다리를 내려 놓으며 은근히 호기심이 알듯 모를 듯 발동하기 시작했다.

“밤을 새웠더니 피곤한데 우리 한잠자고 나서 할까?”

“주무세요. 나는 조금 더 하다가 피곤하면 잘께요. 실은 나도 어제 잠을 못 잤거든요.”

일어나서 현관으로 통과하는 문과 옆문을 잠궜다. 혹시나 눈치없게 아가씨들이 들이 닥치면 꼴이 아니기 때문에 별 문제는 아닌데도 신경이 쓰였다. 그러는 사이에 그녀는 과도를 찾아 갖고 와 과일을 깍기 시작한다.

무슨 놈의 배가 어린애들 머리만 하냐?  과일가게에서 싸 가지고 온 배가 상당히 크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잡숴보세요. 참 달아요.”

그녀가 성냥 알맹이에다 배 한 조각을 꽂아 나에게 준다.

“그래! 미스연도 먹어봐.”

“달기는 달다. 올해 이 집 농사는 잘 되었는 모양이군….

몇 조각 집어 먹었더니 금새 없어졌다.

“또 깎을까요?”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