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오는 2008년 4월부터 건설보증시장이 손보사 등에 전면 개방된다. 지난 2000년 규제개혁 차원에서 시행을 예고한 이후 6년이 지났기 때문이다.
정부의 계획대로라면, 2년 후 무풍지대로 여겨졌던 건설보증시장의 보호막은 사라진다. 건설보증 업계가 이제 전업 보증기관만 30여 곳이 넘는 너른 들판으로 내몰려 생존게임을 해야 하는 상황을 맞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와 관련 업계의 ‘힘겨루기’가 만만치 않다. 이를 지켜보는 건설업계의 시선은 곱지 않다. 40여년간의 블루오션(비경쟁시장)이 너무 길었다는 것이다.
12일 건설업계와 공제조합 관계자들을 차례로 만난 결과도 마찬가지다. 여전히 의견 대립이 만만치 않았다.
▲시장개방···중소업체 힘들어진다
지난 달 27일 열린 ‘보증보험 개방정책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공개 토론회에서 보여준 것 처럼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공제조합노조는 보증시장 개방이 조합의 부실화와 건설산업의 극단적인 양극화를 불러올 것이라고 주장한다. 건설업체 도산과 보증회사의 과당경쟁에 따른 보증회사의 도산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며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송명기 건설공제조합노조위원장은 “공공성이 강한 건설보증보험시장을 열면 결국 자금력이 딸리는 중소 업체들은 어려워 질 수밖에 없다”고 강변했다.
신용도가 떨어져 보증을 받는데 어려움이 많은 중소업체가 전체 1만2천여 건설사 중 90%를 넘는 상황에서 시장이 개방되면, 이들 업체들은 더 이상 갈 곳이 없어 줄도산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송 위원장은 “공제조합은 그 동안 이윤추구가 아닌 공공성을 생각해 이들 업체들에게 이자율을 낮춰 융자도 내 주고, 조합의 이윤 역시 건설사에 현금배당 방식으로 되돌려 주고 있다”며 공공적 측면을 강조했다.
그는 “개방으로 시장을 빼앗기면 이율이 현재보다 최대 10배 가량 높아지고, 융자 제한도 강화될 것이 분명하다”며, “손보사의 시장진입이 가능해 지면 자본률에 의한 공공성 훼손이 자명하다”고 밝혔다.
또한 “공제조합은 법인세법상 타 금융기관이 누리는 세제혜택(손비산정)에서 소외되고 있으며, 감소한 수입을 보완할 수 있는 사업의 확장도 건설산업기본법령에서 제한해 놓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손발이 다 묶인 상황에서의 불공정한 경쟁의 도마 위에 놓일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결국 시장개방 이후 경쟁력을 상실한 조합은 중소 건설사들을 도울 수가 없게 되고, 이 때문에 중소 건설사들은 시장논리에 잠식당해 건설산업의 양극화가 지금보다 더욱 깊어질 것이라는 말이다.
그는 이러한 현상을 막기 위해서라도 “공공성에 초점을 맞춰 관련 업계 등의 의견 수렴을 충분히 한 연후에 추진해도 늦지 않다”고 밝혔다.
▲건설업계···공제조합 너무 안일했다
그러나 건설업계는 다른 시각을 보였다. 그동안 공제조합이 너무 안일했다는 것이다. 경쟁상대 없이 시장을 독식해 오다 서울보증보험이 뛰어들자 변화를 보였다는 것이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서울보증보험의 시장 진출로 보증수수료가 50%가량 낮아졌다”며, “건설업계로서는 독과점보다는 경쟁이 오히려 득을 보는 것 아니냐며 내심 반기면서 관망하는 상황”이라고 반응을 전했다.
이 관계자는 “공제조합 쪽에서 시장이 개방되면 대형 건설사들은 자사의 손보사로 눈을 돌릴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지금은 같은 계열사끼리도 경쟁하는 상황이어서 손익계산을 정확히 따져 이율이 싸고 서비스가 좋은 곳으로 가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금감원이나 규제개혁위원회가 보증시장 개방을 하려는 것은, 손보사들처럼 경쟁력을 키워 들판에서 직접 ‘늑대’와 싸워 살아남는 법을 배우라는 뜻이라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건설회사 관계자 역시 “이미 금융시장이 개방되어 외국 자금이 증권시장의 40%를 차지하는 상황”이라며, “건설보증 시장 역시 개방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누구를 위한 개방인가?
우리나라는 미국과의 FTA 체결을 위해 4대 선결조건(미국산 쇠고기 수입재개·의약품 약값 산정 기준 개선·자동차 배기가스 기준 완화·스크린쿼터 축소)을 ‘알아서’ 해결해 주며 빠르게 진행시키려 하고 있다.
관련 업계와 시민단체 등의 거센 반발에 밀려 지지부진한 상황이지만, 경제5단체장이 직접 나서 시위 자제를 호소하고 일부 언론들은 이러한 기류에 편승해 맞장구를 치고 있다.
건설보증보험시장 역시 정부는 속도를 내겠다는 방침이다. 이미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보증보험 시장개방 관련 연구용역을 맡겨 추진 중이며 ‘시장개방 로드맵’이 확정되는 대로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정부 내에서도 이견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 2004년 동북아금융허브추진위와 2005년 7월 재경부가 시장 개방이 시기상조라는 결론을 내리고 중장기 검토과제로 유보한 바 있다.
그러나 올 상반기에 개방 쪽으로 방침을 급선회하면서 속도를 내고 있다. 최근엔 개방은 기정사실이고, 단계적 개방이냐 전면개방이냐를 놓고 관련 부처 사이에 이견이 있는 정도다.
그러나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는 식으로 FTA 협상 논의가 가시화 된 이후 공청회를 여는 등 개방 논의에 속도가 붙은 점으로 미뤄보면, 정부가 알아서 움직인 것 아니냐는 비판을 피하긴 어려워 보인다.
IMF때 보증보험 부실을 막기 위해 10조가 넘는 돈을 투입한 정부는 공적자금 회수를 위해서라도 보증보험의 안정적 운영이 필요한 상황이었기에 더욱 그렇다.
미 무역대표부의 압박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FTA 협상 전에 공적자금에 대한 전방위적인 압박이 있었던 것이 공공연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6월27일 열린 ‘보증보험 개방정책’ 토론회에서 임수강 박사(심상정 의원실 보좌관)는 “성급히 보증보험을 개방해 경쟁을 유도하기보다는 보증산업내 ‘유효경쟁’ 체제를 구축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보증보험의 공적기능을 살려서 서민·중소기업 지원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다시 한 번 돌아볼 필요가 있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