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IT업계에는 더 이상 중견기업이라는 명칭은 찾아보기가 어려울 전망이다.
VK가 부도위기에 직면하면서 지난해 법정관리에 들어간 삼보컴퓨터와 MP3업계 부동의 1위에서 추락의 길을 겪고 있는 레인콤 등이 국내 IT업계를 이끌던 중견기업이었다.
그러나 IT코리아의 주역인 이들 회사는 대기업의 위협, 중국의 저가 공세, 경기위축 등으로 성장은 고사하고 생존마저 위험한 실정에 놓이게 됐다.
지난 27일 가까스로 최종부도 위기를 넘긴 VK도 텔슨전자와 세원텔레콤의 파산 이후로 국내 대표적인 중소 휴대폰업체로 떠올랐지만 현금 유동성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 1997년 배터리 업체로 시작한 VK는 2001년 GSM방식의 휴대폰 제조업에 뛰어 들어 급성장했다.
특히 일찍부터 자체 브랜드를 통해 해외에 진출, 텔슨전자, 세원텔레콤 등을 파산으로 몰고 간 중국쇼크를 피하면서 팬택에 이은 대표적인 중견휴대폰업체로 떠올랐다.
지난 2004년에는 매출 3800억원, 순이익 115억원을 기록하는 등 이른바 잘 나가던 업체였던 VK는 지난해부터 순손실 649억원의 적자를 낸 것에 이어 지난 1분기에도 영업손실 89억원, 순손실 165억원의 초라한 성적을 거뒀다.
지난 3월 SK텔레콤으로부터 100억원을 차입한 데 이어 이달에도 유상증자를 실시해 유동성 위기로부터 탈출(?)하는 모습을 보였던 VK는 채산성이 낮은 중국시장에서의 비중을 높여 왔던 데 비해 수익성이 높은 내수시장에서는 저가폰만을 판매해 수익을 얻기 어려운 상황으로 내몰렸다.
여기에 환율 하락이 결정타를 날렸다. 가뜩이나 글로벌업체들과 저가경쟁을 하기 힘든 상황에서 환율 하락으로 교역조건조차 악화되면서 수출 부진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삼보컴 법정관리에 대기업과 외국업체가 자리 대신
지난해 5월18일 법정관리를 신청한 삼보컴퓨터는 한국 PC산업에서 중견업체가 설 공간이 급격히 축소될 것임을 예고하는 사건으로 받아들여졌다.
특히 삼보는 매출 2조원을 넘어서는 컴퓨터 전문기업이어서 국내 컴퓨터시장에서의 충격은 한층 더했다.
삼보가 법정관리에 들어간 이후 중견업체들이 즐비하던 컴퓨터 시장에는 삼성전자, LG전자 등 대기업과 HP, 델 등 외국계 기업들이 채워가고 있는 실정이다.
중견업체들이 열세에 몰리는 것은 이미 성장기를 지난 PC시장에서 시장규모도 축소된 것도 있지만 진입장벽이 낮아지면서 기술보다는 마케팅이 주요 경쟁력으로 등장해 글로벌 기업에 비해 브랜드 파워도 없고 가격경쟁력도 떨어지는 국내업체들이 위기에 빠진 것은 너무나 당연한 수순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이에 국내 중견업체를 대표하고 있는 현주컴퓨터와 대우루컴즈 등의 향후 행보가 주목받고 있다.
◆MP3 1위 레인콤도 뒷방마님 전락
MP3 국내 1위로 승승장구하던 레인콤이 올 들어 침체의 길로 접어들어 시장에서도 제품을 찾아볼 수 없는 뒷방마님 제품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대기업인 삼성전자와 코원시스템 보다 디자인과 제품기술력에서도 절대 우위에 있었던 레인콤은 시장의 트렌드를 제대로 읽지 못한 결과 현재는 시장에서 외면을 받고 있다.
고속성장을 이어가며 콧노래를 부르던 레인콤에 먹구름이 낀 것.
애플, 삼성, 코원 등의 기업들이 HDD형 MP3플레이어를 속속 내놓는 상황에서 레인콤은 HDD형 보다 플래시메모리 타입에만 주력해 신제품을 내놓지 못했고 제품을 중국에서 만들어 국내에 판매해 온 것이 알려지면서 시장에서 레인콤의 제품들을 ‘저가 중국산’으로 이해하기에 이르렀다.
HDD형 MP3플레이어의 세계 최강자인 애플은 국내업체들의 텃밭인 플래시메모리 타입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고 일본의 소니도 출사표를 던졌다. 국내에서는 삼성전자가 사업 본격화를 발표했고 그동안 이 시장에 관심을 보이지 않던 LG전자도 제품을 내놓은 상태다.
이들 대기업의 가격공세가 장기화되면서 시장점유율 1위인 레인콤도 견디기 쉽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제품라인업을 MP3에서 확대한 레인콤의 행보도 주목할만 하다.
지난 5월에 출시한 지상파DMB용 TV B10의 경우 ‘몰래보는 TV’라는 슬로건답게 휴대성을 높인데다 저렴한 가격이 강점으로 평가된다.
출시된 지 불과 한 달만에 2만대나 판매될 정도로 큰 인기다. 레인콤은 B10 판매량이 꾸준히 늘어날 것으로 보고 거치대 등 액세서리도 조만간 선보일 예정이다.
지난 5월 초소형 TV가 처음 등장할 때만 해도 비관적인 평가가 대부분이었다. 상당수 전문가들조차 보다 넓은 화면과 동영상 기능을 갖춘 휴대용 멀티미디어 플레이어(PMP)가 대세로 자리잡고 있는 상황에서 초소형 DMB 단말기 수요는 제한적일 것으로 전망했었다.
하지만 높은 방송 수신율을 자랑하는 데다 화면도 선명하다는 게 강점으로 부각되면서 향후 중견기업 레인콤의 성장동력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