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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FTA, 계층간 사회갈등 '새 불똥'

[해설] 친미 vs 반미 대립구도 가능성 확산 등 첩첩산중

이인우 기자 기자  2006.06.09 10:2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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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한국경제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한미FTA협상이 진행중이다. 정부는 한미FTA 타결의 당위성과 경제효과를 설파하며 대국민 설득에 여념 없다.

그러나 반대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더욱 꼬이는 점은 한미FTA 협상이 경제논리 뿐만 아니라 양국의 정치ㆍ외교ㆍ안보논리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한미FTA로 빚어진 갈등은 국내 계층간 대립으로 확산될 가능성까지 내재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 2월 한미FTA 협상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고 밝힌 뒤 이달 5일부터 나흘째 워싱턴에서 1차 본협상을 진행중이다. 이는 격랑이 휘몰아치는 세계경제의 대양(大洋)에 ‘한미FTA호’라는 거대 함선을 띄운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지금까지 한국경제는 일부 업종에 대한 보호무역 정책의 틀 속에서 보호받으며 비교적 안전하게 성장해왔다. FTA는 그러한 보호막을 완전히 거두는 것이다.

특히 한미FTA 협정이 타결될 경우 우리 경제 환경은 지금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일 전망이다. 만약 정부의 계획대로 내년 상반기 중 한미FTA를 체결한다면 국내 기업은 거대 미국 기업들과 각각 토너먼트를 벌여야 한다.

◆ 미국 기업과 토너먼트 불가피

이에 따라 수많은 중소제조ㆍ서비스관련 기업은 별다른 대책 없이 FTA체제로 편입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한미FTA협정을 반대하는 학계와 시민단체로 구성된 ‘한미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 움직임에도 적지 않은 힘이 실리고 있다.

이러한 정부 및 일부 경제단체와 범국민운동간 대립은 경제적 관점보다 정치적 맥락에서 심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의 전망이 더욱 불투명해진다. 한미FTA 저지를 내세운 범국민연대는 현재 미국 위싱턴에서 원정시위는 물론 미국 노동단체와 연대투쟁을 벌이는 등 강력한 반대활동을 펴고 있다.

이들은 한미FTA 체결이 결국 한국의 대미종속을 심화시키는 ‘자발적 식민주의’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한다. 미국의 한미FTA 추진은 경제적으로 한국을 대중국 진출의 전초로 삼는 한편, 군사안보적으로도 대중국 견제의 교두보화 하기 위해서라는 분석이다.

또 미국은 FTA를 통해 한국의 대일 수입선을 미국으로 전환하는 교역전환(trade diversion) 효과를 노리는 것이란 관측을 내놓기도 한다. 이와 동일하게 한미FTA를 국제정치의 역학관계 관점에서 보더라도 각 집단의 입장에 따라 사뭇 다른 결과를 유추한다는 것이 더욱 큰 문제다.
 
◆ 찬반양론 관점 너무 커 문제

삼성경제연구소는 지난 5월 말 발표한 보고서 ‘한미FTA의 정치경제학’을 통해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거론했다. 삼성경제연구소 곽수종 수석연구원은 보고서에서 “(한미FTA는) 경제체질 강화와 동북아에서의 위상 제고를 이루기 위한 지렛대로 활용하는 것이 가능”하다며 “경제적 이득과 안보 강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수단”이라고 분석했다.

이는 한국이 중화권역의 대륙권과 미ㆍ일 해양권이 정치ㆍ경제적으로 충돌할 수 있는 지정학적 요충지라는 전제조건을 바탕으로 내린 결론이다.

또 한미 양국간 동맹관계가 경제를 포함한 포괄적 동맹으로 업그레이드되는 등 한반도 평화유지 정착에 기여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한미FTA는 동아시아 지역 내 미국의 군사안보정책과 한국의 경제적 위상 제고를 위한 구상이란 의미를 갖는다는 것이다.

청와대 정문수 대통령보좌관도 정부가 대국민홍보를 위해 운영중인 FTA 관련 인터넷 사이트에 최근 기고한 글을 통해 “한미FTA는 21세기 한미 동반자 관계를 강화하기 위한 우리의 안전밸브이자 번영을 위한 발판”이라며 “세계시장에서의 한·중·일 경쟁관계에서 우리에게 유리하게 작용하고 현재 지지부진한 동북아 경제협력체제 구축에도 촉진제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지정학적 의미는 이번 협정의 표면에 내세우는 경제적 효과와는 별개의 문제다. 경제논리와 함께 국제정치 논리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미국으로서는 한미FTA를 통한 동맹체제 강화로 중국을 견제하고 동북아시아에서의 패권을 유지하는 부수적 효과도 얻게 되는 것이다.

미국이 혈맹으로 여기는 일본을 제치고 한국을 FTA우선협상자로 지정한 것은 경제적 효과보다 한국과 중국의 유착을 막기 위해서다. 중국의 남하와 태평양 진출에 따라 미국이 주도하는 동북아질서가 흔들일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아시아ㆍ태평양경제협력체(APEC)를 통해 아시아에서의 영향력 증대에 힘써왔다. 그러나 ‘아세안+한·중·일’의 동아시아 공동체 논의에서는 배제되자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 국민합의 도출 산 너머 산

더욱이 한국 경제가 중국권에 포함될 경우 한ㆍ중 협력은 정치ㆍ외교 분야로 확대될 수밖에 없고 미국의 동북아 영향력은 크게 약화된다. 미국은 한미FTA를 통해 이같은 우려를 일거에 불식하길 기대하고 있다.

반면 ‘한미FTA 저지 범국민연대’는 한미FTA협정에 내재된 양국 동맹체제 강화 문제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또 협정을 주도하고 있는 재정경제부를 ‘모피아’라고 부르며 미국측의 경제논리를 강요하는 집단이라고 주장한다.

모피아는 원래 재정경제부(Ministry of Finance and Economy)와 마피아(Mafia)의 합성어로 재경부 관료들이 경제계까지 장악하는 것을 빗댄 표현이다. 최근 시민단체 등 한미FTA 체제에 반대하는 측에서는 대부분 미국 유학을 거친 재경부 관료들이 모든 경제문제를 미국측의 입장에서 풀어나간다고 지적해왔다.

따라서 현재 진행 중인 협상도 한국의 실질적인 경제효과보다는 미국논리에 더욱 치중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지난 3월 외환은행 매각 과정에서 ‘먹튀’라는 신조어를 남긴 론스타 사태가 불거지면서 더욱 확산됐다. 외환위기 후 외환은행을 론스타에 매각하면서 당시 재경부 관료들이 미국자본의 손을 들어줬다는 비난이 속출했다.

론스타 사태는 국민들의 외국자본에 대한 거부감만 키운 것으로 끝났다. 더욱이 이같은 일련의 사태를 통해 경제적 사안에 대한 국민 정서도 둘로 나뉘는 양상을 띠게 됐다.

한미FTA를 둘러싼 논란도 이미 ‘친미’와 ‘반미’라는 엉뚱한 방향으로 치닫고 있다. 특히 일부 진보적 성향의 단체의 신자유주의에 대한 거부감과 이어지면서 일은 더욱 복잡하게 꼬여가고 있다. 이러한 반발은 우리나라의 식량안보와 연결된 쌀 시장 개방 강행 등에 따라 폭넓은 국민지지를 얻어낼 수 있다.

◆ 협상일정 재조정 불가 원칙 고수

따라서 한미FTA는 미국과의 협상보다 국내에서의 협상이 더 힘겨울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만약 정부가 한미FTA를 반대하는 국민여론을 일방적으로 무시하고 강행할 경우 국회비준 문제가 걸릴 가능성도 있다.

지난 5ㆍ31 지방선거에서 한미FTA를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한나라당이 압승을 거둠으로써 국회의 동의가 어려울 것 같지 않지만 지역구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의원들을 감안할 때 낙관적이지만 않을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충북에 지역구를 둔 열린우리당 모 의원의 보좌관은 “만약 한미FTA 비준절차가 시작될 경우 지역 농민과 시민단체 등의 눈치를 보게 될 것”이라며 “다른 농어촌 지역구 의원들도 마찬가지 입장”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그러나 일단 미국과의 협상 일정을 재조정할만한 입장이 아니다. 이미 내년 상반기 안에 협상을 마무리 짓고 2008년부터는 본격적인 FTA체제를 가동한다는 프로그램이 나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와 한미FTA를 저지하고자 하는 국민 사이의 대립은 더욱 격화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양측의 대립은 경제 문제의 차원을 넘어 심각한 국론 갈등 양상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여기다 자유무역체제에 따른 업종 간 갈등도 두드러질 것으로 보인다. 한미FTA는 단순한 경제논리만으로 풀 수 없는 21세기 초 한국의 거대담론으로 자기증식을 계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