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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범석의 라멘기행] 라멘 전시장 토쿄편 ① '츠케멘'

"라멘은 국민식, 라멘을 알면 일본이 보인다"

장범석 푸드 칼럼니스트 | bsjang56@hanmail.net | 2018.04.18 14:35:02

[프라임경제] 토쿄는 일본 근대 라멘의 발상지다. 1910년 라이라이켄(来々軒)이 중국의 면 요리를 일본인 입맛에 맞춰 내놓은 퓨전요리가 그 출발점이다. 이 문화가 전국에 퍼지기 시작하면서 라멘은 발전과 진화를 거듭한다. 이들 중 상당수가 토쿄로 역진출했다.

▲츠케멘(특제모리소바). ⓒ 東池袋大勝軒

토쿄는 원래 간장 타레에 곡선 면을 사용하는 쇼유라멘의 고장이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면 입맛도 변하는 법. 라멘은 전통적으로 2,30대 남성층, 그 중에서도 샐러리맨 군단이 시장을 주도한다. 끊임없이 새로운 맛을 추구하는 그들을 기존의 맛만으로는 잡아둘 수 없다. 라멘이 유행을 타는 이유다.

토쿄는 거대한 라멘 전시장이다. 하루에도 몇 군데씩 새 점포가 생기고 또 사라진다. 그 중 경쟁이 가장 치열한 이케부쿠로(池袋)・신쥬쿠(新宿)・와세다(早稲田)거리・토쿄역 지하상가를 '토쿄 라멘 4대 격전지'라 부른다. 라멘의 고수들이 사활을 걸고 맛을 개발하고 지켜내는 현장이다. 이곳에 일본 라멘의 현재가 있고 미래가 숨어 있다. 최근에는 아키하바라(秋葉原)가 새로운 격전지로 떠오르는 분위기다.

'라멘기행 토쿄편'에서는 많은 토쿄 라멘 중 대중의 선호도가 높은 것을 중심으로 3회에 걸쳐 소개한다.

토쿄를 대표하는 라멘의 하나가 '츠케멘(つけ麺)'이다. 점포에 따라 '모리소바'나 '츠케소바'로 부른다. 츠케멘은 일반 라멘과 달리 면과 스프가 각기 다른 용기에 담겨 나온다. 여름철 판 메밀처럼 면을 적당량씩 스프에 적셔 먹는 라멘이다. 따뜻한 스프에 차가운 면이 일반적이지만 면까지 따뜻한 '아츠모리'도 있다. 50년 넘게 나름의 라면 문화를 가진 우리로서는 생소한 스타일이 아닐 수 없다.

츠케멘에 나오는 스프를 '츠케타레'라 하는데 대체적으로 진하고 신 맛이 강하다. 매운 맛을 첨가하는 점포도 있다. 츠케멘은 면에 중점을 둔 라멘이다. 부드럽고 탄력 있는 식감을 위해 삶은 면을 찬물에 담가 두는 과정을 거친다. 면발이 굵고 면의 양이 일반라멘의 두 배에 가깝다. 토핑은 일반 라멘과 큰 차이가 없다.

내용물을 다 먹은 후에는 입가심 형태로 타레에 다시를 혼합해 마신다. 이것을 스프와리라 한다. 츠케멘의 '츠케'는 한자 '지(漬)'의 일본식 표기로 '담그다'는 의미다.

츠케멘은 1955년 토쿄 나카노(中野)의 중화소바 전문점 타이쇼켄(大勝軒)에서 태어났다. 개발자 야마기시・카즈오(山岸一雄)는 사촌형이 운영하던 점포에서 점장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그는 라멘 점 연수시절 자투리 면을 그릇에 담아 스프와 간장을 부어 먹곤 했다. '마카나이'라 부르는 종업원용 식사다. 점장이 된 이후에도 예의 마카나이를 먹곤 했는데 그것을 본 단골이 그 요리를 원했다고 한다. 맛보기로 건넨 것이 호평을 받자 본격적으로 개발에 착수해 미증유의 작품을 만들어 낸다. 점포 앞에 행렬이 늘어서고 츠케멘의 역사가 시작된다. 그의 나이 21세 때 일이다. 1961년 그는 동(東)이케부쿠로점을 차려 독립한다. 그때부터 간판 메뉴로 내세운 '특제모리소바'는 지금도 변함없이 손님을 맞고 있다.

젊은 시절 과로로 40대부터 건강이 급격히 악화된 그는 말년에 100여명의 제자를 키우고 독립을 지원하는 등 선행을 많이 쌓는다. 마지막에는 본사 직영점에 후계자를 지명하고 2015년 8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장례식에는 수백명의 제자와 코이케 토쿄지사(당시 중의원) 등 저명인사가 다수 참석했다. 사람들은 츠케멘 보급에 일생을 바친 그를 '츠케멘의 원조' 또는 '츠케멘의 아버지'라 부른다. 그는 전설이 됐다.

◆토쿄토(東京都) 소개

토쿄토는 지방자치법으로 규정된 47개 광역지방공공단체의 하나다. 공식 행정명칭은 토쿄시(市)가 아닌 토쿄도(都)다. 따라서 행정 공무원이 근무하는 곳도 도청이 된다. 우리가 관습적으로 사용하는 토쿄는 토쿄토의 23개 특별구를 가리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토쿄는 1868년 메이지 신정부가 들어서며 쿄토로부터 수도의 기능을 물려받는다. 이후 150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1370만 인구에 2193.96㎢의 면적을 가진 매머드 도시로 변모했다. 서울의 3.6배에 이르는 넓은 면적에는 도시 외곽 타마(多摩)지구와 이즈(伊豆)・오가사와라(小笠原) 등 도서지역이 포함된다. 본토에서 남쪽으로 1천km이상 떨어진 태평양 상의 섬까지 토쿄토의 일부라는 사실이 흥미롭다.

토쿄의 옛 지명은 에도(江戸)였다. 에도는 강(江)의 어귀(戶)라는 뜻이다. 이 일대는 1603년 막부가 열릴 때까지 호죠(北条)씨가 다스리던 변방의 영지에 불과했다. 전국시대 말기 토요토미가 천하통일을 이루는 과정에서 호죠 가문이 멸망하고 그 뒤를 토쿠카와가 이어 받는다.

천하 패권을 잡은 토쿠가와는 에도를 통치의 본거지로 삼는다. 막부 265년간 통치 거점이 된 에도성은 1453년 오타·도칸(太田道灌)이라는 무장이 축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후 토쿠가와 가문에 의해 수차례 개보수를 거쳐 에도시대에는 전국 최대의 성곽을 가진 성이 됐다.

1868년 메이지 신정부가 들어서며 에도는 토쿄로 이름을 바꾼다. 오랜 기간 일본의 중심이었던 쿄토의 동쪽에 생긴 수도라는 의미다. 당시 쿄토의 서쪽에 있던 오사카를 서경이라 부르기도 했다. 동시에 천황이 기거하게 된 에도성도 황성으로 바뀌었다.

1945년 태평양 전쟁 막바지에 토쿄는 미군의 폭격으로 온 도시가 파괴되는 비극을 맞는다. 그 때 일본은 오가사와라의 남쪽 끝에 위치한 유황도(硫黃島)를 놓고 미국과 처절한 공방을 벌인다. 1개월여 동안 양측 5만명에 가까운 사상자와 부상자를 내고 전투는 미국의 승리로 끝난다. 미군으로서는 본토 폭격을 위해 활주로가 있는 이 섬이 꼭 필요했던 것이다. 유황도는 괌이나 오키나와도 거의 같은 거리상에 있다. 현재 이곳에는 해상자위대 기지가 설치돼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면적은 23.7㎢로 우리나라 백령도의 절반 크기다.

전쟁 후 토쿄는 미국의 지원과 한국전쟁의 특수에 힘입어 눈부신 성장을 지속한다. 1964년 토쿄 올림픽 개최를 계기로 부흥사업의 일단락을 선언한다. 토쿄와 오사카간 신칸센이 개통된 것도 같은 해다.

오늘날 토쿄는 세계 최대의 경제도시다. 도시 총생산 지수에 있어 뉴욕을 앞질러 세계 1위다. 주변도시를 합친 도시권 GDP 통계에서도 2016년 뉴욕권과 LA권을 제치고 수위에 올랐다. 참고로 전 세계 도시권 GDP 순위 4위는 서울권이고 5위가 런던권이다. 서울과는 1988년 자매 우호도시 결연을 맺었다.

◆명소소개(유물과 신사)

△황거와 이중교
황거(皇居)는 천황이 집무하고 거주하는 궁성으로 외부인을 접견하는 궁전, 천황과 황후가 생활하는 고쇼(御所), 천황의 국사를 보조하는 궁내청 등으로 구성됨. 천황이 어류를 연구하고 농사를 짓는 생물학연구소, 황후가 누에를 치는 양잠소 등 부속시설이 있음.

이중교(二重橋)는 궁성 안쪽 하승교(下乘橋)가 이중이었던 데서 붙여진 별칭이었으나 지금은 정문 입구 돌다리를 가리키는 말로 통용됨. 다리교각 아치가 안경 모양이라는 데서 '메가네바시'로 불리기도 함. 정문을 지키는 황실경찰과 함께 궁궐의 상징. 궁궐 115만㎡, 바깥 외원 포함 230만㎡.

△토쿄역사
1914년 영업개시, JR동일본(東日本)・JR동해(東海)・토쿄메트로가 공동사용. 1일 3000편 발착, 승객 20만, 플랫폼 30개(재래선18・신칸센10・지하철2). 1945년 미군폭격으로 후 1947년 복원. 야에스(八重洲) 출입구 지하 '라멘・스트리트' 유명.

△센소지(浅草寺)와 아사쿠사(浅草)
628년 창건, 토쿄에서 가장 오래된 절. 1800년대 후반 서민문화의 중심지 아사쿠사의 상징적 존재. 경내 입구 카미나리문(雷門)과 본당 앞 호조몬 사이 올망졸망 늘어선 나카미세도 볼거리. 경내 오중탑과 아사쿠사 신사. 절과 지역 이름이 같은 '浅草'지만 읽는 방법이 다름.

△메이지(明治)신궁
근대국가를 확립한 메이지천황 부부를 기리는 곳. 새해 참배에 가장 많이 찾는 신사. 경내 인공림으로 조성한 숲이 유명. 1912년 천황사후 국민의 자발적 참여와 봉사로 1920년 창건. 식민지였던 조선・대만・사할린 등지에서도 모금. 경내 약73만㎡. ※신궁(神宮)은 황실의 조상신을 제사하는 곳으로 신사(神社)보다 규모가 큼

△야스쿠니(靖国)신사
1800년대 격변의 시대 공을 세운 유지와 전쟁 희생자를 제사 지내는 곳, 1869년 창건. 제국주의 시대 경내에서 일본도를 만들어 장교들에게 공급하기도. 2차 세계대전 전범이 합사되어 수상 등 정치인의 참배가 주목을 끄는 곳, 한국과 중국이 특히 민감함. 경내 9만3356㎡.

장범석 푸드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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