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린트
  • 메일
  • 스크랩
  • 글자크기
  • 크게
  • 작게

[발행인칼럼] 줄리아 여사를 떠나보내며

 

이종엽 발행인 | lee@newsprime.co.kr | 2017.12.06 16:32:26

[프라임경제] 2000년 5월, 혈기왕성한 30대 청년 기자는 하와이 호놀룰루 공항에 도착했다. 사진으로만 본 세계적 휴양지 하와이였지만 주체할 수 없는 무거운 마음을 가지고 호텔로 향했다.

"무슨 말을 먼저 꺼낼까. 아니, 반겨는 주실까. 한 꾸러미 각종 서류와 사진들을 과연 쳐다는 보실까…."

다음날 오전 11시, 초인종을 눌렀다. 이미 한국에서 수 차례 전화통화를 했지만 그녀가 내 뱉은 단 한마디.

"나는 한국과 관계 없는 사람입니다. 돌아가십시오."

필자와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손비 줄리아뮬럭.리(Julia Mullock LEE) 여사와의 첫 만남은 이렇게 시작됐다.

하와이에서 일주일간 체류하는 동안 매일 찾아 갔지만 줄리아 여사는 만남을 거부했고, 셋째날 부터는 지인의 집과 요양원을 오가면서 만남을 거부 했다. 필자는 귀국하는 순간까지 마음 속에 담아뒀던 이야기들은 언제인가 모를 다음 기회로 미뤘다.

그로부터 두 달 뒤, 여름휴가를 이용해 다시 하와이를 찾았다. 줄리아 여사는 설마 다시 찾아 올 것이라고는 생각 못했는 지 다소 체념한 듯 약 한 시간의 시간을 허락했다. 물론 그때나 지금이나 필자는 영어와 미국 문화에 과문한 탓에 현지 지인의 통역으로 대화의 시간을 이어갔다.

정말 묻고 싶고, 알고 싶고, 사진이라도 한 컷 찍고 가고 싶었지만, 그것은 욕심임을 바로 깨달았다. 그분의 미소에서 이미 많은 것을 느꼈다.

지난 100년 근현대사의 중심에서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삶을 살았음을 익히 알고 있던 필자는 줄리아 여사의 건강상태와 일과생활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만 나누고 언제일지 모르는 훗날을 기약하고 편안하게 헤어졌다.

▲좌측 부터 줄리아 여사, 이해원 옹주, 필자. 2005년 서울 ⓒ 프라임경제

짧지만 강렬했던 만남을 가진 뒤 5년의 시간이 흐른 2005년 7월16일. 조선의 27대왕이자 대한제국 2대 융희황제의 동생이자 황태자인 영친왕의 아들, 이구 황태손의 붕어 소식이 현해탄을 건너왔다.

만감이 교차했다. 이구 황태손의 의문의 사망사건이 연일 매스컴에 오르내리자 줄리아 여사의 모습이 뇌리를 스쳤다.

줄리아 여사는 전 남편인 이구 황태손의 붕어 소식에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하지만 20세기 역사의 장벽은 아직도 그녀에게는 넘지 못할 거대한 산과 같이 존재했다.

이구 황태손은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1897∼1970)의 외아들로 어머니는 일본 왕족 출신으로 1901년 11월 4일 메이지 일왕의 조카인 나시모토노미야 모리마사의 딸로 태어난 마사코(方子)다. 이방자의 어머니는 화족(華族·작위를 받은 귀족) 출신의 나베시마 이츠코로 일본 내 최상층 신분의 집안이다.

내선일체의 명분으로 대한제국과 일본 왕족의 물리적인 결합으로 태어난 이가 바로 이구 황태손이다. 주지의 사실 처럼 영친왕과 덕혜옹주는 일본에 볼모로 잡혀서 사실상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었다.

그렇기에 아버지 영친왕은 자신의 아들만은 자유롭게 해주고 싶었을 것이다. 이구 황태손은 미국 MIT에서 공부한 뒤 자유연애를 통해 연상인 줄리아 여사와 만나 결혼까지 했지만 해방 이후 전주이씨대동종약원은 더 이상의 혼혈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사실상 강제 이혼 수순에 돌입한다.

벽안의 외국인 황태손비는 그렇게 한국과의 인연이 강제로 끊어진 것이다.

이후 필자는 줄리아 여사와 인연을 이어 나갔다. 영친왕의 형인 의친왕의 자손들이 일부 한국에 있어 40년 만에 조우의 시간을 만들었다.

의친왕의 부인 수덕당 이씨의 자녀인 이해원 옹주와 만나면서 지난 회한의 시간을 서로 위로하면서 또 다시 만나길 약속했다.

이해원 옹주는 올해 100세로 조선왕조 519년 역사 통틀어 가장 장수한 황족으로 필자가 최근에 만났을 때도 과거에 비해 기억력은 떨어졌지만 눈빛만은 여전했다.

지금도 글을 쓰면서 많은 생각이 든다. 2017년 12월6일, 줄리아 여사의 서거 소식을 접하면서 대한민국 이전 다른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이들이 아직 우리 곁에 있지만 그들에 대해 관심을 가져본 적이 있는지 말이다.

100세를 맞이한 이해원 옹주 역시 경기도 하남의 무허가 판자촌에서 곤궁하게 살다가 최근 재개발되면서 칠순의 아들과 임대주택에서 힘겹게 삶을 이어가고 있다.

내년이면 국민소득 3만불을 맞이한다는 대한민국이 과거와 단절할 것이 아니라 지난 역사와 관련된 이들에게 따뜻한 관심이 더욱 필요할 때다.

줄리아 여사의 서거 소식에 다시 한번 죄송함과 회한이 머리 속에서 오랫동안 떠나지 못할 것 같다.

이종엽 프라임경제 발행인  


  • 이 기사를 공유해보세요  
  •  
  •  
  •  
  •  
  •  
  •  
  •  
  •  
  •  
  •    
  • 맨 위로

ⓒ 프라임경제(http://www.newsprime.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배너
배너

프라임TV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