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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범석의 벤토탐방] 밥을 요리한 '타키코미·챠한'

"벤토 알면 문화 보이고, 문화 알면 일본 보인다"

장범석 푸드 칼럼니스트 | bsjang56@hanmail.net | 2017.08.29 13:49:58

[프라임경제] 우리나라는 불과 반세기 전만 해도 흉년이 들면 쌀에 각종 구황작물을 섞어 밥을 지었다.

조나 기장류의 잡곡을 비롯해 감자·무·시래기 등 밭작물로 쌀 부족분을 메워야 했다. 밤·은행·대추 등 열매식품은 물론 해조류도 소중한 재료였다. 

▲타키코미(炊込み) 밤 벤토. ⓒ 에키벤 홈페이지

이웃나라 일본도 우리와 사정이 비슷했다. 지역이나 소득에 따라 차이가 있었지만, 농촌이나 산간지방 식량사정은 1960년 초반까지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쌀이나 보리에 여러 부재료를 섞은 밥과 죽이 일상음식이었다. 아이들이 쌀밥을 맘껏 먹을 수 있는 설을 기다리는 풍경도 동일했다. 

그 후 일본의 식탁은 고도성장에 힘입어 흰 쌀밥으로 바뀌지만, 지금도 많은 사람이 추억이 깃든 그 때 그 밥을 찾는다. 기근을 극복하기 위해 먹던 서바이벌 음식이 이제는 송이·죽순·게 같은 고급 재료가 들어간 별미음식으로 탈바꿈했다. 

이처럼 쌀에 다른 재료를 넣어 짓는 밥을 '타키코미(炊き込み)고항' 또는 '고모쿠(五目)메시'라 한다. 외관은 마치 한국의 '영양솥밥'과 흡사하다. 이전에 소개한 군마현 오기노야의 카마메시가 대표적이다. 

'타키코미'의 사전적 의미는 '쌀에 야채·산채·어육 등을 넣어 밥을 짓는 것'이다. 이를 칸사이 지역에서는 '카야쿠(加薬)'로 부른다. 몸에 좋은 약용성분이 들어갔다는 의미다. 

처음에는 생강이나 산초 같은 향신료를 가리켰으나, 근래 들어 밥맛을 돋궈주는 모든 재료나 양념을 통칭하는 용어가 된다. 타키코미는 취사 후에도 오랫동안 맛이 유지되어 벤토용으로 적합하다. 특별한 반찬이 필요 없다는 점도 장점이다. 

타키고미의 사촌 쯤 되는 음식으로 '마제(混ぜ)고항'이라는 일본식 비빔밥이 있다. 밥에 다른 재료를 섞는다는 점은 타키코미와 같지만 조리하는 과정이 다르다. 

타키코미가 처음부터 재료를 넣고 취사하는데 비해 마제고항은 보통 밥에 준비된 재료를 올려 비빈다. 우리에게 익숙한 회덮밥이나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치라시즈시 등이 마제고항의 전형이다. 

이러한 밥 요리는 나라시대부터 있어온 '카테메시'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 음식의 기원은 밥의 양을 늘리기 위해 잡곡과 주변에 흔한 야채를 넣어 취사한 데서 비롯된다. 

그 후 시대가 바뀌고 조리방법이 진화하며 오늘날 타키코미고항에 이르렀다. 카테메시는 현재 사이타마(埼玉)현 치치부(秩父)시의 향토음식으로 지정돼 있다. 

벤토 소재로 빼 놓을 수 없는 또 한 가지가 볶음밥이다. 볶음밥은 중국을 대표하는 서민음식으로 밥과 재료를 강한 불에 볶아 완성한다. 지역마다 다양한 조리방식이 존재하고, 인접한 동남아 대부분 나라까지 폭넓게 보급된 요리다. 

일본도 7~9C 당나라에 파견한 견당사라는 사절단을 통해 볶음밥 문화를 받아들인다. 하지만 그 당시 일본에는 밥을 뜨거운 기름에 볶는 문화가 없어 대중화 단계에 이르지는 못했다. 대신 찬밥에 참기름을 넣고 데워 먹는 새로운 문화가 탄생한다. 

요즘 같은 볶음밥은 메이지유신 전후 개방된 요코하마와 코베의 차이나타운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당시 나가사키에 거주하던 중국인들이 집단으로 이주해 이곳에서 중화요리 전문점을 연 것이다. 에도시대 나가사키는 대외무역을 위해 제한적으로 외국인 거주를 허용한 지역이었다. 

볶음밥을 일본어로 '챠한(炒飯)' 또는 '야키메시(焼飯)'라 한다. 두 단어 모두 밥을 볶는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조리방식에서 차이가 난다. 우선 큰 프라이팬(중국 솥)을 볶음도구로 사용하는 챠한과 달리 야키메시는 '텟판(철판)을 사용한다.

챠한이 팬에 계란을 먼저 풀고 재료를 볶는데 비해 야키메시는 재료를 볶은 후 계란을 나중에 푼다. 마무리 소스도 중국식과 일본간장으로 나뉜다. 야키메시는 오사카지역 향토요리인 '타코야키'나 '오코노미야키' 조리법을 응용한 볶음밥으로 볼 수 있다. 

지역적으로도 선호도가 갈린다. 토쿄 등 칸토 지역과 홋카이도는 챠한이 대세이고 오사카와 그 서남쪽은 야키메시가 우세하다. 

흔히 챠한을 '불의 예술'이라 한다. 강한 불로 10여가지 재료를 신속하게 볶아 내는 것이 요리의 핵심이다. 이 때 재료에 기름(lard)이 너무 배지 않도록 계란을 골고루 입혀주는 기술도 필요하다.

해외에 잘 알려진 브랜드가 '양주(揚州)챠한'이다. 이에 대한 조리법을 지도하는 양주시 조리사협회가 규정한 표준재료는 다음과 같다. 상등미로 지은 밥·계란·해삼·말린 패주(貝柱)·닭다리 살·전통 햄·표고·죽순·완두콩·새우·대파가 그것으로 마치 산해진미가 망라된 듯하다. 여기에 재료의 비율, 소금과 후추 등이 조화를 이룰 때 최상의 맛이 탄생한다. 

일본에 거주하는 중국인들의 목소리를 전하는 'china-reaction'에서 한 투고자는 "간단해 보이지만 쉽지 않은 요리다. 무엇보다 밥알 하나하나가 살아 있지 않으면 안 된다. 프라이팬을 흔드는 작은 차이 하나가 맛을 바꾼다. 중국 5000년 역사가 이 한 그릇에 녹아있다"며 챠한을 예찬한다.

장범석 푸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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