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린트
  • 메일
  • 스크랩
  • 글자크기
  • 크게
  • 작게

[이은대의 글쓰는 삶-29] 누구의 입장에서 바라보는가

 

이은대 작가 | press@newsprime.co.kr | 2017.01.11 18:53:38

[프라임경제] 지금은 아파트에 살고 있지만, 학창시절 우리 집은 양옥으로 된 단독주택이었다. 대문으로 들어서면 현관까지 가파른 계단을 올라야 했고, 그 위로는 비를 막는 처마가 둘러져 있었다.

처마에는 집 안으로 들어오는 전기의 차단기가 설치됐고 조금의 공간이 남았는데, 바로 그 곳이 온 동네 비둘기의 거주지가 됐다.

대문에서 현관으로 올라가는 가파른 계단에는 항상 비둘기의 배설물이 난잡하게 떨어졌고, 직장생활을 했던 어머니는 시시때때로 물을 붓고 빗질을 하면서 '빌어먹을 비둘기'라는 욕설을 입에 달고 사셨다.

비둘기 울음소리는 낮과 밤을 가리지 않았기에 우리 집은 마치 금방이라도 귀신이 튀어나올 것 같은 음침한 분위기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처마에 비둘기가 살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온갖 방법을 동원했다. 철조망을 구입해서 처마에 둘러치기도 하고, 라면박스로 처마를 메워 공간을 없애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모든 방법들은 비둘기를 막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비둘기의 수는 날이 갈수록 증가했고, 우리 가족은 결국 비둘기의 배설물과 지긋지긋한 울음소리를 포기하고 말았다.

얼마 전인가, 뉴스를 통해 비둘기에 관한 소식을 들었다. 공해를 일으키는 주범으로 비둘기가 지목됐다고 한다. 각 도시별 역 광장에서 수많은 비둘기떼가 한꺼번에 날아오르거나, 전기시설물 등에 비둘기의 배설물이 떨어져 감전을 일으키는 경우까지 발생하다보니 극단의 대책이 필요했었나보다.

그렇다고 해서 전국에 있는 비둘기를 한꺼번에 총으로 쏴 죽이거나 몰살시킬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환경문제를 담당하는 사람들도 예전 우리 가족들 못지않게 골치를 앓겠구나 싶었다.

한때 평화의 새로 불리며 올림픽 개막일에 푸른 하늘을 수놓았던 비둘기가 이제는 인간에게 환경의 피해를 주는 불편한 존재로 변해버렸다.

때로는 이런 생각을 해본다. 비둘기 입장에서 보자면 얼마나 억울한 일일까. 비둘기는 자신들이 태어나고 살아온 길고 긴 지난 세월 동안 달라진 것이 아무 것도 없다.

그냥 태어났고, 먹이를 구했으며, 종족을 번식시키고, 보금자리를 찾았다. 환경을 변화시킨 것은 인간이고, 건물을 지은 것도 인간이며, 전기시설을 만든 것도 인간이다. 모든 것은 인간인 우리가 변화시켰는데 이제 와서 비둘기를 해악의 존재로 지정해버렸다.

똑같은 사람끼리의 문제라면 비둘기 입장에 서 있는 사람은 얼마나 원통할까. 가만히 살아왔는데, 모든 것이 당신 탓이라며 세상의 손가락질을 받고 있다. 나 같으면 분하고 억울해서 잠이 오지 않을 듯 하다.

물론 삶의 중심을 인간에 놓고 생각해야 하는 것도 어쩌면 당연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함께 살아간다는 마음을 결코 놓아서는 안된다는 사실이다.

비단 비둘기라는 짐승에 국한시킬 문제는 아니다. 우리는 대부분 자신의 입장에서, 자신이 속한 조직의 입장에서, 자신의 가족의 입장에서 모든 문제를 해석하고 판단한다. 무심코 던지는 나의 말과 행동에 어쩌면 분하고 억울해하는 사람들이 있을 지도 모르겠다.

뭔가를 잃어본 사람은 누구보다 소중함에 대한 가치관이 뚜렷하다. 그것이 비둘기든 사람이든 나와 함께 이번 생을 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아끼고 사랑해야 한다. 삶의 기본이며 진리다. 행복한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이다.

나에게 이익이 되느냐 아니면 피해를 주느냐 라는 단순한 이분법적 해석에서 벗어나, 어떻게 하면 함께 잘 살아갈 수 있느냐를 고민하며 성장해나갈 수 있는 삶을 살아야겠다.

이은대 작가 / <내가 글을 쓰는 이유>,<최고다 내 인생>,<아픔공부> 저자

  • 이 기사를 공유해보세요  
  •  
  •  
  •  
  •  
  •  
  •  
  •  
  •  
  •  
  •    
  • 맨 위로

ⓒ 프라임경제(http://www.newsprime.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프라임TV

+ 더보기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