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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청문회 '만만한 기업인' 아닌 '살아있는 거악'과의 투쟁

[재계는 동네 북②] 日, 2년간 차분하고 꾸준히…美, 수정 헌법 제5조 따라 '망신주기' 안 돼

임혜현 기자 | tea@newsprime.co.kr | 2016.11.24 14:31:35

[프라임경제] 기업의 탐욕은 끝이 없다. 정치에 휘둘리면서 돈을 뜯기기도 하지만 거기 기생하는 것을 즐기고 혹은 정권을 이용하면서 성장하기도 한다. 때로는 그것이 한 국가(자국일 수도 혹은 다른 나라일 수도)를 뒤흔드는 파장을 일으키기도 한다. 문제를 수사기관에만 맡겨두기 적합치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래서 국민들의 알 권리 보장은 물론 진실 발견을 위해 유권자 전체를 대변하는 의회 차원에서 청문회에 돌입하는 경우가 세계적으로 적지 않다. 하지만 기업을 필요 이상 잔인하게 해부하는 것까지 국민적 합의가 이뤄진 것은 아니다. 이번 최순실 국정농단 청문회 돌입 전에 고민해 볼 과제다.

미국이나 일본의 청문회는 그 유구한 역사로 우리에게 거울이 된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재벌에 해당하는 거대 기업의 관계자들이나 국정 핵심 관료들까지도 모두 캐는 정보력은 물론, 객관적인 진행 등도 선진국 정가의 깊이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나이든 세대에서는 막강한 미국의 청문회 시스템의 힘을 기억하는 이가 적지 않다. 1977년 인권 기치를 내건 카터 정부가 들어선 뒤 코리아 게이트(미국에서는 흔히 프레이저 청문회로 부름)가 한국 정부를 흔들었기 때문. 가난했던 한국은 미국 양곡 조달이 절실했다.

그런데 박동선씨 양곡 수입권 장악 문제는 미국 의원들에게 뇌물을 제공하는 쪽으로 번졌고, 필연적으로 미국 언론의 비리 감시망에 포착됐다. 부패한 의원들도 있었으나, 강직한 미국 정치인들이 청문회 준비에 나섰다. 여기서 탄생한 프레이저 소위원회는 주한미군 군납 관계, 미국 내 한국 중앙정보부 활동과 걸프 등 미국 기업의 한국 정부에 대한 뇌물공여 여부 등 한미 관계 전반을 조사할 권한을 갖게 됐다.

사실 우리 입장에서는 코리아 게이트로 박정희 전 대통령 당시 한국 정권의 문제에만 시선을 주지만, '미국 기업의 한국 당국에 대한 뇌물 의혹 등'을 포함하는 등 철저히 국제경제 이슈였다고 할 수 있다. 냉전 당시 지구의 절반을 주도하던 미국이 자유진영 각국을 먹여살리는 과정에서 대등한 경제 교류가 이뤄지지 않았고 그 와중에 이를 사업 기회로 활용하려 벌어지는 기업의 이권 술수도 대단했기에 의회 차원에서 돋보기를 댄 것이다.

이런 미국 의회의 저력은 이란-콘트라 사건 청문회에서도 세계의 이목을 끌게 된다. 이란-콘트라 사건은 1985년 레바논에 억류된 미국인 인질 석방 협상에 이란이 중재자로 도움을 준 것에 대해 미국이 고성능 미사일 등 수출금지 품목을 넘겨주는 혜택을 제공한 사건이다. 이 자체로도 충격적이지만, 이란에서 받은 대금을 지구 반대편의 니카라과에 사용한 것이 문제를 일으켰다. 

니카라과의 친미 반군 세력을 지원하는 데 이 돈을 썼다 나중에 드러나면서 국제적으로 파장을 일으킨 것. 당시 레이건 정부의 여러 관료와 군 관계자 등이 이 추문으로 의회 증언대에 섰다.

일본 의회도 청문회를 진행하면서 기업과의 싸움에서 대단한 투지를 보인 바 있다. 일본은 명문화된 청문회 운영 규정은 갖고 있지 않으나, 국정조사권 등을 활용해 사실상의 개별 사건 담당 청문회를 운영한다. 일명 록히드 사건에서 일본 의회는 약 2년에 걸친 긴 호흡으로 사건을 끌고 간 적이 있다.

지금도 이 사건이 회자되는 이유는 다나카 전 수상 같은 거물들이 대거 개입된 데다 국방 문제를 놓고 이권 개입에 이용한 행태가 비난의 대상이 됐기 때문. 일본 검찰이 록히드 사건 수사에 매달려 특수수사의 획기적 발전의 기틀을 마련한 바도 있지만, 정치권에서도 이에 열의를 갖고 매달린 것이 사실이다.

엄정하고 긴 호흡 조사, 불필요한 기업엔 조사권 최대한 아껴

특히 일본 의회가 이 문제에서 놓은 초석은 기업과 정부가 모두 연루된 사건을 다루는 청문회가 어때야 하는가를 보여준다고 하겠다. 기업이 편하기 때문에 타격 대상으로 삼은 것이 아니라, 철저히 큰 거악을 캐는 데 가장 적합한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이다.

록히드가 태평양 건너편에 있다는 한계점 때문에 검찰의 수사에도 한계가 있을 것임도 분명했기에 정치권의 힘이 필요했던 것으로 생각, 스스로 성심껏 조사를 진행했다.

"일본 중의원 예산위원회는…증언을 들었으나 이들이 모두 收賄(수회, 뇌물을 제공하는 것을 말하는 일본 범죄수사 용어로 현재 한국에서는 사용하지 않으나, 당시 언론은 일본 표현을 그대로 쓰고 있다) 사실을 부인함에 따라 진상 규명에 실패했다(경향신문 1976년 2눨18일)."

"와까사 도꾸지 전일본공수(ANA) 사장 등이 일본 중의원 증언에 출두하는 것을 계기로 록히드 뇌물 사건에 대한 일본 국회 조사는 새로운 국면에 돌입한다(경향신문 1976년 3월1일)."

▲일본 의회는 계파 정치의 소굴로도 인식돼 있으나, 국가를 흔드는 대형 비리가 터지면 청문회를 통한 규명 최일선에 선다. 중의원이 록히드 사건 규명에 최선을 다한 사례가 좋은 예다. ⓒ AFP=뉴스1

당시 이 같은 한국 언론의 전언을 보면, 일본 의회도 문제 해결에 기업들을 불러들여 다각도로 파헤치면서도 엄청난 한계를 동시에 느꼈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일본 동경지검 특수부에서 주미 법무참사관을 지낸 검사의 인맥을 활용, 미국 당국으로부터 록히드 관련 자료 중 일부를 제공받아 수사에 성공함으로써 검찰과 의회의 협력과 선의의 경쟁이 교차하면서 진행되던 록히드 사건은 진상 규명 성공으로 막을 내리게 된다.

여기서 일본이나 미국 의회가 보이는 열정이 우선 눈길을 끌지만, 기업과 정부 고위층 등을 불러 조사하는 복잡한 사안에서도 정한 선을 지키는 점도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일본 중의원은 록히드 사건 조사에서 ANA 등 자국 기업 관계자들을 대거 불러들였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록히드라는 미국의 거대 기업과 자국의 정치 거물들이 얽혀 있음을 밝혀내는 일부 비법으로 사용된 것을 알 수 있다. 즉 '살아있는 거악'을 캐고 '바다 건너 미국 기업'을 단죄하기 위해 개입된 당사자인 자국 기업들을 불러 문제의 전체적인 윤곽을 그리는 데 활용한 것이지, 곁가지를 터는 데 정신을 집중해 몸통을 놓치는 우를 범하는 데에는 철저히 선을 그었음을 알 수 있다.

ANA의 행각도 큰 문제였지만, 록히드 문제라는 더 큰 비리를 캐기 위해 이 부분을 조사하는 것을 상대적으로 뒤에 비상카드로 뒀다 활용한 것을 위의 보도 일부만으로도 짐작할 수 있다.

◆기업 털어도 불가피한 경우에 한정, 수정 헌법 제5조 등 방어책 인정

미국 의회는 특별조사위원회든 상임위원회 산하 소위원회든 모두 해당 위원회의 결의로 누구든지 출석시킬 수 있는 막강한 힘을 부여받고 있다. 하지만 반대로 증인은 누구든 자신을 범법자로 만들 수 있는 불리한 증언을 하지 않을 권리를 수정헌법 제5조에 의해 인정받고 있기 때문에, 쉽게 진실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래서 의회는 증언자의 의회 증언 협조를 단서로 해 그를 기소할 수 없도록 보장하는 기소면제 혜택을 줘 진실을 유도하기도 하고, 위증에 따른 고발 조치 등 강경 수단도 활용한다.

코리아 게이트의 핵심 박동선씨도 기소 면제 합의를 약속받고 증언에 나섰다. 이는 우리와 형사처벌 시스템이 다른 미국 특성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으나, 이는 형사법 측면에 치우친 해석이다.

법무 당국과 검사가 범죄자와 협상으로 자백을 얻을 수 있는 일명 플리 바게닝과 달리, 이는 의회가 가진 정치적 고려에 의한 힘으로 별도의 해석을 할 필요가 있는 제도다. 의회가 법무부에 기소 절차 착수 금지를 명령하는 힘을 갖고 있고 이 권한은 국민들로부터 위임받은 헌법적인 권한이라는 것.

미국 의회는 소환영장에 의해 증언자(증언대상자)가 가진 서류를 제출하게 할 수도 있다. 대신 기업으로서도 변화들을 동원, 자체 조사를 벌여 이에 대비한다. 특히 '변호사와 의뢰인의 특별관계'를 이용해 미리 자체적으로 문제가 될 것으로 생각되는 서류를 변호사 측의 보호망으로 넘긴다.

록히드 스캔들에 대한 청문회가 실시될 것으로 보이자 '변호사와 의회인의 특별관계'를 이용해 해당 기업 측은 사실상 서류 제출을 거부하는 방어망을 짜는 수를 썼다(미국 의회나 행정당국이 그럼에도 철저히 이 사건에 대한 자료를 모았고 이 중 일부를 일본 검찰에 비선으로 제공한 점은 일본 청문회 부분에서 이미 언급한 바와 같다).

결국 미국이나 일본 제도를 보면, 청문회에서 거대하고 복잡한 비리를 캐기 위해 연루된 기업들을 불러들이는 것은 조사의 벽돌을 차곡차곡 쌓아나가는 와중에 필요한 때 사용되는 것이지, 정작 주요 혐의자 자체를 겨냥하지 않고 변죽만 울리는 '한건주의'는 철저히 지양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방어권이 보장되는 한에서 의회에 협조해 기업들이 진실을 말할 수 있게 해주고, 이것을 소중히 활용해 거대한 비리집합체를 통째로 캐는 데 전력을 다한다는 것이다.

이는 이미 아이젠하워 전 대통령이 퇴임하면서 미국의 군과 군수기업이 결합하는 군산복합체 문제를 지적하고 그 견제를 당부한 것과 무관치 않다. 작은 나라 한둘쯤은 쿠데타를 일으키거나 리베이트를 제공해 흔들 정도의 힘을 가진 글로벌 기업 정도는 돼야 의회가 청문회를 무기로 정면승부를 벌이는 것이지, 작은 기업의 문제를 올리는 도마로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미국의 정치권에서도 록히드에 관심을 갖고 들여다 본 문제 접근 혹은 걸프가 연루된 것으로 의심됐던 프레이저 청문회, 미국과 별개로 착수됐던 일본 의회의 자체적 록히드 청문회 등을 보면 적어도 의회가 직접 나서서 청문회로 털어야 할 문제 기업의 크기나 그 해악의 중대성이 어때야 하는지 세계 여러 나라 정치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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