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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해부] 대림그룹 ①태동과 성장…창립 77주년 기본이 만든 '혁신'

고속도로·서울종합운동장·광화문광장까지 대한민국 대표 건축물 모두 대림 역사

이보배 기자 | lbb@newsprime.co.kr | 2016.11.23 17:12:37

[프라임경제] 국내 대기업들은 대내외 경제상황과 경영방향에 따라 성장을 거듭하거나, 몰락의 나락으로 내몰리기도 한다. 내로라하는 세계적 기업일지라도 변화의 바람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면 2, 3류 기업으로 주저앉기 십상이다. 기업은 끊임없이 '선택'과 '집중'을 요구받고 있다. 국내산업을 이끄는 주요 대기업들의 '선택'과 '집중'을 파악해보는 특별기획 [기업해부] 이번 회에는 '대림그룹' 1탄 태동과 성장에 대해 살펴본다.

고속국도 1호 경부고속도로 준공, 우리나라 경제성장의 발판이 된 포항제철 1기, 1000톤의 철골 돔을 올린 아시아 최대 규모의 국회의사당, 서울종합운동장, 청계천 복원, 세종문화회관과 독립기념관, 매주 촛불이 타오르는 광화문광장까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건축물들은 모두 77년 대림그룹의 역사와 함께 숨 쉬고 있다.

◆허허벌판에 새긴 원리원칙의 기본

1939년 인천 부평 한적한 초가집에 걸린 새로운 간판 '부림상회'. 이곳이 바로 우리나라 최초의 건설회사 대림의 출발지다.

대림의 창업주 수암 이재준은 집도 몇 채 없는 허허벌판 같은 땅에 장사를 시작하면서 '인천과 영등포공업지대가 연결되는 중간지점인 만큼 이 지역이 곧 경인공업지구의 핵심지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대림그룹 수송동 사옥. 지금도 사옥은 저 자리를 지키고 있다. ⓒ 대림

창업주의 예상은 적중했다. 날이 갈수록 목재수요가 급증하면서 부림상회가 건자재를 들여오면 바로 물건이 바닥나기 일쑤였다.

초기의 부림상회는 이재준 창업주와 그의 고종사촌형 이석구 전 대림산업 사장, 이석구의 매제 원장희 등 3명이 이끌었다. 창업 당시 3만원의 자본금으로 7명의 직원과 함께 출발한 부림상회는 1947년 50여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원목을 직접 생산하고 제재하면서 고객들에게 목재를 어디에 어떻게 쓸 것인지 물어 쓰임에 맞는 좋은 재료를 보내온 창업주는 1947년 대림산업으로 이름을 바꾼 뒤 건설 부재라는 백지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건설업에 진출한 대림산업은 해방정국과 한국전쟁 복구사업, 1960~70년대 경제개발계획, 1970~80년대 중동신화와 중화학공업 개발사업에 앞장서 참여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건축물들이 바로 대림의 역사이자 대한민국 건설의 역사인 셈이다.

대림산업은 1962년 건설업체 시공능력평가제도가 생긴 이래 55년 연속 10대 건설사의 위상을 지켜오고 있으며, 재계는 이런 대림산업에 대해 '기본과 원칙'을 바탕으로 한 내실 경영이라고 평가한다.

다른 대기업들이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하고, 불확실한 투자에 매진할 때 대림은 기본과 원칙에 입각한 위기관리와 환경분석을 통해 수많은 국내외 경제 위기를 극복해온 것.

나아가 대림은 위기를 새로운 성장과 도약의 기회로 삼아 국내 최초로 해외 건설 외화 획득, 업계 최초 기술연구소 설립, 국내 최초 아파트 브랜드인 e편한세상 론칭, 사장교와 현수교 기술 국산화 등 대한민국 건설 혁신의 역사를 이뤘다.

실제 1960년대 중반, '우리나라 총수출 실적 1억달러 달성'이라는 뉴스에 온 나라가 떠들썩했다. 그러나 다른 산업과 달리 건설은 수출과 무관하다는 판단 아래 정부 지원은 전혀 없었고, 국내 건설업의 해외진출 역시 '제로'였다.

당시 아직 개척되지 않은 시장에 대한 수많은 어려움과 불가항력적인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해외로 나가겠다는 건설사가 하나둘 등장하기 시작했고 1966년 1월 대림은 베트남 진출에 첫발을 내디뎠다.

▲해외건설 외화 획득 1호 베트남 라치기아 항만공사. ⓒ 대림

해군시설처(OICC)에서 발주한 베트남의 리치기아 항만공사를 수주하며 국내 건설사의 외화 획득 1호라는 역사적인 기록을 남긴 대림은 이후 세계지도를 놓고 본격적인 개척정신을 발휘했다.

1973년 11월 사우디에 지점을 설치하고 아람코사가 발주한 정유공장공사를 16만달러에 수주하면서 '해외 플랜트 수출 1호'라는 쾌거를 달성하는가 하면 1975년 9월에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정유공장 건설공사를 수주했다.

2016년 현재까지 미국, 사우디, UAE, 이란, 헝가리, 중국, 브루나이, 필리핀 등 총 35개의 국가에서 산업을 진행했으며, 플랜트, 댐, 도로, 항만, 공공주택 건설 등 다채로운 실적을 보유하고 있다.

◆건설 너머 영역 확장 '디벨로퍼' 사업 도약

쉼 없는 도전으로 쾌거를 이룬 대림은 공사를 수주해 설계하고 시공하는 건설회사에서 이제는 프로젝트 자체를 발굴, 시공부터 운영까지 총괄해 수익을 창출하는 '디벨로퍼'로 영역을 넓히는 중이다.

현재 파키스탄에서 정부·민간 공동개발사업 형태로 2개의 수력발전소를 건설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고, 대림이 추진하는 디벨로퍼 사업의 대표 분야인 민자발전 사업을 위해 2013년 대림에너지를 설립했다.

민자발전이란 민간회사가 투자자를 모집해 발전소를 짓고 일정 기간 소유, 운영하며 전기를 팔아 투자비용을 회수하는 모델이다.

전력소비가 급증하는 동남아, 인도, 중남미 등 신흥시장을 중심으로 대규모 민자발전 발주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민자발전을 대림그룹의 중장기적인 성장동력으로 육성하는 것.

아울러 대림은 호텔사업에 그룹의 역량을 결집하고 있다. 대림은 2014년 국회의사당 인근에 GLAD 여의도를 오픈하며 자체 개발한 호텔 브랜드인 GLAD를 론칭했고, 올해는 강남 논현동에 글래드 라이브(GLAD LIVE) 강남을 오픈했다.

GLAD에는 대림그룹의 호텔 시공 및 운영 능력이 결집돼 있다. 사업기획, 개발부터 시공 및 운영까지 전 과정을 그룹에서 맡고 대림산업이 사업기획과 개발을 주관, 그룹 내 건설업을 하는 대림산업과 삼호가 시공, 운영과 서비스는 그룹 내 호텔과 리조트 사업을 하는 오라관광이 맡는다. 

대림은 현재 3곳의 GLAD 호텔을 비롯해 제주 우주항공호텔, 메이힐스리조트 등 8개 호텔 및 콘도, 총 2400객실을 운영하고 있다.

2017년에는 마포 공덕, 2018년에는 강남 대치동에 새로운 GLAD 호텔을 선보일 예정이다. 장기적으로는 3000객실 규모의 호텔을 운영하는 그룹사로 자리매김한다는 청사진이다.

▲대림그룹 故 이재준 창업주. ⓒ 대림

마지막으로 대림은 기업형 임대주택사업인 뉴스테이를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1월 인천도시공사에서 발주한 인천 도화 도시개발구역의 우선 협상 대상자로 선정되면서 첫 기억형 임대주택사업자가 됐다.

대림은 기업형 임대주택사업 진출을 위해 2014년 주택임대관리업 등록을 마친 후 건축사업본부 내에 '주택임대사업팀'을 신설해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건설회사를 이 땅에 출발시킨 창의적 개척정신과 대한민국 역사에 새겨진 무수한 현장 경험, 1호의 기록들을 만든 도전적인 해외진출…. 이는 전체를 읽어낸다면 전부를 해낼 수 있다는 대림의 믿음에서 비롯됐다.

한 번도 머물지 않았던 개척정신의 선구자 대림은 내일의 지금에 도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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