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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창고로 전락한 아카사카 프린스 호텔 1911호

[역사 기획] 대한제국 '이구 황태손' 의문사 5년 - 下

이종엽 기자 | lee@newsprime.co.kr | 2010.07.22 08:45:29

[프라임경제] 일본 동경시 치요다구 기오이초 1-2번지 그랜드프린스 호텔 아카사카 1911호실은 이구 황태손이 돌아가신 곳으로 대한제국 역사 끝자락에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진 곳이다.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 이은(李垠)은 1897년 광무황제와 순헌황귀비 엄씨사이에서 태어나 1900년 영친왕으로 책봉되고 1907년(융희 1년) 황태자로 책봉되자 그해 12월 이토히로부미에 의해 일본 유학의 명분으로 볼모로 잡혀가게 된다.

이후 학습원과 일본 육사와 육군대학을 거쳐 1920년 일본왕족인 나시모토 마사코와 결혼한다. 이후 일제는 일왕궁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아카사카에 1930년 일본 궁내성이 유럽풍 형태로 지상 2층, 지하 1층 규모 목조 건축물을 지어 영친왕 내외가 거주하게 된다.

1년 뒤 이구 황태손이 태어나면서 자연스럽게 이곳은 대한제국 마지막 혈족의 역사가 기록되는 곳이자 자연인 이구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곳이기도 하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사진= 아카사카 프린스 호텔 1911호는 현재 창고로 사용되고 있으며, 이구 황태손이 사망한 장소인 화장실 역시 변기 입구를 테입으로 막아 사용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박스 내 사진은 1911호실 표지>

호텔 내 폐쇄된 유일한 객실

2005년 7월 16일 이구 황태손 사망 이후 1911호실은 어떻게 되었을까. 최근 기자는 일본 도쿄 취재 중 이곳을 찾았다.

결론 부터 말하자면 문제의 1911호실은 놀랍게도 창고로 변해 있었다. 도쿄 중심자리에 위치한 최고급 호텔의 객실이 창고로 변해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놀랐다. 7평 남짓한 23.5m²의 작은 방에서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손이 돌아가신 그곳이 이제 어느 누구도 머무를 수 없는 창고로 전락한 것이다.

현재 1911호는 객실 용품과 청소 도구를 비치하는 곳으로 변해 있었고 시신이 발견된 곳인 욕실 입구에는 문을 열기 힘들 만큼 각종 청소 도구들로 가득 차 있었으며, 양변기에는 사용하지 않음을 알리 듯 테입으로 막아 놓았다.

혹시 다른 층의 11호실도 창고 기능을 하지 않을까라는 의구심에서 찾아 보았지만 결과는 이미 예상대로였다. 각 층의 11호가 엘리베이터에서 바로 보이는 위치이기 때문에 층의 가장 구석 자리에 일반적 창고 기능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있는 것과 달리 1911호실이 타 객실과는 다른 특수성이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40여 층 높이에 715개의 객실을 보유한 일본 최고의 호텔 중 유일하게 페쇄된 곳이 다름 아닌 이구 황태손이 돌아가신 곳이다. 

이와 관련해 호텔 관계자에게 문의한 결과 더욱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호텔 객실 담당 부서 관계자에게 “특정 호실을 예약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호텔 규정상 특정호실 예약은 불가하다”고 밝혔다.

이어 “1911호실이 현재 사용되는가”라고 묻자 이 관계자는 한참을 주위 사람들에게 문의 한 결과 “현재 그곳은 객실로 사용할 수 없는 곳으로 다른 객실을 이용해 주기 바란다”면서 “1911호실이 사용되지 않는 구체적 이유는 객실 담당팀을 비롯한 타 부서에서도 알 수 없으며, 더 이상 알려 줄 수 없다”고 전했다. 

기자 질문의 이유와 신분을 밝히며 “지난 2005년 객실 사망사고와 관련해서 폐쇄한 것이 아니냐”고 재차 질문에 “그 자체도 어느 누구의 업무소관이 아니므로 더 이상 답변은 죄송하다”면서 지금까지의 대화 내용에 대해 익명을 요구해 묘한 여운을 남겼다.

이 대목에서 여러 정황을 유추할 수 있지만 영리 목적을 가지고 있는 호텔이 과거 사건으로 인해 영구 폐쇄된 조치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미제라고 할 수 있다. 즉, 이구 황태손의 의문의 죽음 처럼 그 현장도 의문의 장소로 바뀐 것이다.

현재 구관(舊館)으로 사용되고 있는 영친왕 저택은 1952년 매각된 이후 호텔로 개조해 운영하다가 현재는 프랑스 레스토랑 및 결혼식 연회장으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그러나 이곳에는 다른 호텔과는 다른 점이 있었다. 바로 구관 입구에는 대형 일장기가 양쪽 문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일반적인 호텔 입구는 만국기가 있지만 이곳에는 대형 일장기가 걸려 있어 근현대 일본의 향수를 찾는 곳으로 바뀐 지 오래다. 오히려 대한제국 황족의 한 가닥 흔적을 찾는다는 것은 자체가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영친왕 일가와 덕혜옹주를 비롯한 대한제국의 마지막 주인공들이 머물렀던 이곳을 찾는 한국인들에게 "대한제국은 일본의 영원한 속국"임을 은연 중에 드러내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사진= 호텔 구관은 과거 영친왕 일가가 사용하던 곳으로 지금은 다른 호텔과 달리 대형 일장기가 걸려 있으며, 오른쪽 사진은 구관 바로 옆에 40여 층의 신관이 자리 잡고 있다>

◆ 경술국치 100년, 역사 재정립 필요

지난 해 정부는 경술국치 100년을 기점으로 한일 양국 간 우호 선린과 미래 동반자 관계 형성을 위해 일왕의 방한을 추진한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나간 과거 역사로 인해 아시아 미래 핵심 역할을 담당할 한국과 일본이 보다 긴밀한 관계 유지를 위해 일왕의 방한은 반드시 추진하겠다는 것.

정치적 문제를 넘어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들은 양국간 역사 인식 문제 깊이 만큼이나 해결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특히, 일왕과 일왕가는 대한민국의 법적 정통성을 잇는 대한제국과 풀어야 할 숙제는 산적해 있다. 명성황후 암살, 광무황제 독살, 융희황제 독살 시도, 혼혈 정책을 통한 강제적 결혼 정책, 궁궐 및 능·태실 등의 훼손, 경제를 비롯한 문화 침탈 등 제국주의 당시 일왕가를 중심으로 조직적으로 행해진 범죄에 대한 명백한 사죄와 보상 문제는 아직 미해결로 남아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최근 이구 황태손 문제는 양국 간 역사 인식 문제를 극명하게 표출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감추기 급급한 일본과 애써 잊으려고 하는 한국의 모습 속에서 역사의 한 장면으로 페이지를 넘겨버린 것이다.

향후 한일간 긴밀한 우호적 관계로 발전되기 위해서는 당시 사건에 대한 면밀한 정보 공개와 관련자들에 대한 증언 그리고 이구 황태손의 일본 내 병적 기록 등을 일본은 제공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국내에서도 이구 황태손의 의문사에 대한 다각적인 조사와 함께 전주이씨대동종약원이라는 특정 단체의 문제가 아닌 국가적 민족적 차원에서 확산적 인식전환이 필요한 대목이다.
      
* 본 기사의 일본 현지 취재는 한국언론재단 산하 언론교육원 주관 2009년 언론인 디플로마 과정(9월 28일~11월 16일)의 지원으로 이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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